실종


너를 부르며.
아들아 넌 어디에 있니?
아무렇지도 않게 곧 돌아올 것처럼 집을 나간 후 사라진 너를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단 한번도 잊은 적 없다.
살아있을 꺼란 믿음으로 슬픔과 회한속에 보낸 지난 세월.
꿈에라도 나와 이 어미에게 안부 좀 전해주겠니?
지금 어디에 있는 지 알려주면 안되겠니? 아들아.

 

no1
안 치 웅 (당시 26세)
1963년 10월 17일 출생
1982년 3월 서울대 무역학과에 입학 서울대 학술동아리 ‘대학문화연구회’ 등에 가입 활동
1983년 11월 3일 학생의 날 학내 시위에 참여한 사실로 관악경찰서에 연행
1985년 3월 28일 부평역 가두시위로 구류
1985년 4월 10일 노동운동 탄압규탄 대회로 구류
1985년 6월 29일 구로공단 내 대우어패럴 근로자들의 농성에 참여한 사실로 구속,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죄’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아 김해교도소에서 수형 생활을 하다가
1986년 7월 4일 만기 출소
1987년 9월 복권되어 같은 해 특례 입학하였고, 국제경제학과 4학년 2학기 수료
1988년 2월 대학 졸업
1988년 5월 26일 평소와 같이 외출하였다가 행방불명 됨
동지는 ’82년 3월 서울대 무역학과에 입학하여, 서울대 학술동아리 ‘대학문화연구회’ 등에 가입하여 활동하였으며, ’83년 10월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유인물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과 같은 해 11월 3일 학생의 날 학내 시위에 참여하였다는 이유로 관악경찰서에 연행되었다.
또한 ’85년 6월 29일 구로공단 내 대우어패럴 근로자들의 농성에 참여하였다가 구속되어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죄’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아 김해교도소에서 수형 생활을 하다가 ’86년 7월 4일 만기 출소하였다.
북파공작 특수부대원이라는 박모씨는 “’86년 여름경 학생운동을 하였던 안치웅이라는 대학생을 납치·살해한 후 저수지에 수장했다”고 서울방송(SBS)에 제보하였으나, 박모씨의 소재를 파악하지 못하여 진위를 확인할 수 없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과정에서도 거의 진상규명이 되지 못한 상태이며 가족들은 아직도 애타게 동지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