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사

f-300

우리는 네 얼굴을 보지 못했다.
우리는 네 피투성이 시체도 보지 못했다.
너는 죽어서도 어디로 끌려가서 불타 버렸다.

황사바람 속에서 모든 산은 보이지 않고
몇 자루의 뼈로 네 어머니 앞에 네 목쉰 형제 앞에 돌아왔다.
우리들의 검정가슴 앞에 그렇게 돌아왔다.

김두황 / 김상원 / 김성수 / 김용권 / 노철승 / 박상구 / 박종근 / 신호수 / 이내창 / 이덕인 /

이이동 / 이철규 / 정경식 / 최우혁 / 한희철 / 허원근 /

 

*사진 중에는 신체가 심하게 훼손된 시신의 모습도 있습니다.
노약자, 임산부, 아동, 심약자께서는 관람을 삼가하시지 바랍니다.

 

김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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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사입구에 5발의 총이 한 곳에 집중되어 있는데 총이 한 곳으로 고정되지 않는 한은 불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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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한 시민이 서울역에서 신문지를 깔고 김두황 영전에 술, 담배, 초코파이를 놓고 절을 하고 있는 광경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사진 3>의 서명용지에 “속죄합니다”라는 말을 남겼고 좋은 세상이 오면 말을 해주겠다는 말을 했다. 김두황은 자살이 아니다. 맞아 죽은 후에 자살로 위장하기 위하여 총을 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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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서명용지

김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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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다리가 골절되어 있고 앙상한 뼈만 남아 있다. 구타 상해 후 70일간 병원에 방치해 놨다. 사진에는 없지만 얼굴에 무수한 구타 흔적과 치아가 다 빠져있었다. 행려병자로 취급, 상해후 병원에 방치한 것이다.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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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사람의 피는 물속에서는 응고 되지 않는다. 얼굴 입가에 검게 나타나 있는 피는 최소한 공기 중에서 8시간 이상 노출된 상태를 의미한다. 이마 3cc정도의 뇌출혈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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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시신 닦아논 상태이다. 이마에 무수한 피멍을 볼 수 있다.

김용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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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이층 침대 난간에 목매어 있는 아래 쪽 사진을 보면 목 뒤쪽에 엷은 색흔을 볼 수 있다. 목을 일주하는 색흔이 있다면 이는 자살이 아니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위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1.2m 높이의 난간에 목을 맸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색흔의 흔적은 교사임을 증명한는 것이다.

노철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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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사입구가 삼각형으로 형성되고 크다. 사입구는 보통 원형으로 형성되는데 삼각형으로 형성된 것은 사출구가 아닌가 한다. 뒤에서 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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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사출구라고 설명한 부분이 사출구로 보기에는 너무나 작다. 사출구라면 최소한 5cm이상 파열되어야 할 것이다.

박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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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사진을 보면 목과 얼굴에 검게 울혈 현상(불완전 액사일 경우만 나타나는 현상)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우측 어깨에 흰 천으로 칼자국을 막아 놓고 있다. 사진에는 볼 수 없지만 목에 세 개의 손가락자국이 있었다.
하체 사진을 보면 팔목에도 칼자국을 반창고로 붙여 놨고 낭심은 크게 부풀어 있었다. 불완전 액사(목이 눌려 죽은 것)라고 생각한다. 군 당국의 발표처럼 농약먹고 자살한 것이 아니다.

박종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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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수포가 없다. 안경이 녹아서 눈에 박혀 있다. 죽은 후 태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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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다리에 타박상 흔적을 볼수 있다.

신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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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아래 양말에 피의 색을 보면 응고되지 않고 붉은 색을 띠고 있다. 이는 정신 상태가 온전하지 못한 혼수상태에서 이끌려 동굴까지 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정신이 온전하였다면 양말에 있는 피가 검게 응고되어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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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머리 부분에 골이 연결된 부분이 이탈되어 있다. 두개골이 이탈되어 있다는 것은 생전에 많은 충격을 당했다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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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목맨 자국이 검고 흰 것은 자살 한 것이 아니다. 타인의 힘에 의한 혼수상태 이후의 행위다. 자살의 경우 붉은 자국이 나타나다 있다.

이내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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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가슴을 보면 손에 긁힌 자국이 있고 검은 멍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수중에서 형성된 상처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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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얼굴에 혈흔이 형성되어 있는 것을 보면 혼수 상태에서 물에 버린 것이다. 얼굴의 검은 상처와 머리 부분의 검은 상흔은 익수 이전에 형성된 것이다. 완전히 사망한 것이 아닌 상태에서 물에 던져졌음으로 입에 거품이 나와 있다. 상처가 검게 변하는 것은 익수 이전에 형성된 상처이고 입가에 혈흔이 존재한다는 것은 공기 중에 노출되어(약 1시간)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기록에 보면 시계와 허리띠가 사체 부근 6M 거리에 있었다고 하는데 조사 당국의 발표처럼 사체가 표류한 것이 아니다. 결국 죽은 후에 발견 장소에 버려진 것이다.

이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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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시신 발견 당시 손이 묶여 있는 형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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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얼굴과 어깨 전체가 붉은 피멍이 나있다. 익사 직전에 형성되었다면 검게 변해야 된다. 뿐만아니라 상의와 내의가 완전히 없는 상태다. 상의와 내의는 없고 하의만 있다는 것은 고문과정에서 이뤄진 상황임을 짐작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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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많은 곳의 붉은 타박의 흔적은 수중에서 발생되었다라고 보기 힘들다. 뿐만아니라 수중에서 형성되는 외상은 붉은 색조가 나타나지 않는다.

이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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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총알을 사격장에서 습득하여 보관하다가 한 발로 자살했다고 했는데 머리부분을 확대하여 본 결과 두 개의 차출구를 볼 수 있었으며 이이동 아버지의 생전 말씀이 총구가 두 개가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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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사진에서 총 위치가 각각 다르다. 군 당국이 보여 주는 사진(첫째와 두 번째)을 이이동 아버님이 빼앗아 온 것이다. 세 번째 사진은 군 당국의 공식 발표 사진이다. 사진을 비교해 보라. 가운데 사진은 시신과 같은 방향으로 총이 놓여 있고 처음 사진은 총이 시신을 향하여 놓여 있다. 이 사진들이 말하는 것은 자살로 만들기 위한 사전 모의가 현장에서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철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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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얼굴이 검고 눈이 튀어 나와 있다. 전기 고문에 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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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좌측 겨드랑이 밑을 보면 두 곳에 수포가 형성되어 있다. 크기는 1-2mm이다. 이것은 전기 충격을 받았을 때 발생되는 수포이고 여섯군데에 검은 점이 있는데 선의 접속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정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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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8개월 동안 목이 매여 있었다는 끈이다. 그런데 이 끈에는 한 번도 힘이 실려 있지 않은 상태로 있었다. 8개월 동안 목이 매여 있었다면 직선으로 펴져 있어야 한다. 이 끈에는 목을 맨 적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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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출입증이 타지 않은 것을 볼 수 있다. 주위는 모두 타 있다.

최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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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분신 장소 현장을 확대하여 보면 사람이 그대로 누워 있는 상태를 보여준다. 또한 옷이 타서 그대로 땅에 떨어져 있는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최우혁은 장승처럼 꼿꼿이 서서 타들어 갔다는 것인데 이 것도 말이 되지 않지만, 좌로 한번 우로 한번 굴렀다는 목격자의 말 역시 거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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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사진 왼쪽의 어깨를 보면 관절부분에서 살이 찢겨진 형태를 볼 수 있다. 이것은 죽은 사람을 불에 태웠기 때문에 발생되는 기마형 자세 또는 투사형 자세가 형성된 것이다. 또한 수포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데 자살이라면 수포가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한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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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심장 부분에 삼각형으로 세발의 총을 쏜 자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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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이 사진에서 벽 좌우에 피의 흔적이 있다. 이 피는 한희철이 쓰러지면서 벽에 뭍힌 것이 아니고 피가 튀어서 형성된 돌기인 것이다. 총상에 의한 피의 돌기라고 볼 수 있다. 앉은 상태에서 총을 쏘았다면 최소한 총의 위치가 엉덩이 부분에 놓여 있어야 할 것이다. 총은 머리를 훨씬 지나서 가지런히 놓여 있다. 이것 또한 조작한 것을 의미한다.

허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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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세 곳의 관통상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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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총상 의 크기가 너무 크다. 최소한 1m이상에서 타인이 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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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같은 시간에 같은 총으로 쐈다면 좌측 우측 가슴의 매흔의 형성이 차이가 없어야 하는데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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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4> 앞이 낮고 뒤가 높아야 자기가 총을 쏜 것이 되는데 반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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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5> 총소리에 대한 증언과 현장의 탄피는 2개인데 관통상의 흔적은 3개다. 다른 곳에서 한방을 맞았다는 말이다.